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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기 내에 0에서 100만 달러 ARR을 달성하라고?

스타트업 제대로 하기가, 특히 투자 받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닌 이유

며칠 전에 TechCrunch에서 재미있는 글 읽었다. 20여 명의 VC와 인터뷰하며 2025년의 테크 시장 환경에 대해서 예측한 건데, 그 사람들은 가볍게 몇 마디 한 걸 수도 있지만 우리 같은 창업/비즈니스 꿈나무들 입장에서는 깊이 리서치하며 고민해볼만한 내용이 많다. 여러 단락이 있지만 그 중에서 제일 가볍게 다뤄볼 수 있는 한 주제를 퍼왔다.

인터뷰어의 질문은 "2025년에 기업 스타트업이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였다. 여기에 대한 각 인터뷰이의 답변은..

Kirby Winfield, Ascend 설립 제너럴 파트너: A급 팀과 대규모 시장, 차별화된 솔루션을 갖춘 상태에서, 2분기 내에 0에서 100만 달러 ARR을 달성하며 압도적인 수요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Andrew Ferguson, Databricks Ventures 부사장: AI 중심 제품을 구축하고 있다면, 최고의 기술팀과 초기 제품-시장 적합성(ARR 200만~500만 달러)이 시리즈 A 투자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AI 시대에는 제품 출시에서 500만 달러 ARR에 도달하는 시간이 전통적인 SaaS 시대보다 훨씬 빠릅니다. 다만, 시리즈 B의 기준은 훨씬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며, 이러한 초기 ARR이 얼마나 질적이고 지속 가능한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Jonathan Lehr, Work-Bench 공동 설립자 겸 제너럴 파트너: 후속 투자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시리즈 A 기준은 150만 달러 ARR 정도이며, 이후 이를 3배 이상 지속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Jason Mendel, Battery Ventures 벤처 투자자: 반복 가능성입니다. 구매자/사용자 관점에서 분명한 긴급성을 가진 문제를 해결하는 대규모 시장에서 활동하는 스타트업은 2025년에 시리즈 A를 유치할 좋은 입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 Kirby Winfield라는 분의 답변이 인상적이다. 성공적인 시리즈 A 스타트업은 2분기 내에 0에서 100만 달러 ARR을 달성하는 게 필요하다고? 물론 글로벌 스케일이니 한국 스타트업들과는 상황이 많이 다를 수 있겠지만 100만 달러 ARR은 결코 쉬운 게 아니지 않은가. 그것도 2분기 내에?? 다른 사람들의 답변을 봐도 최소한 100만달러 이상의 ARR 확보를 시리즈A 펀딩에 핵심적인 요인으로 꼽고 있는 듯하다. AI 때문에 매출 달성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짧아졌다고 보는 Andrew Ferguson은 심지어 500만 달러까지 이야기하고 있고 시리즈 B에 대한 bar는 더 높아질 거라 말한다. 아무튼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ARR이 최소 100만 달러 이상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시리즈 A (or later) 스테이지에 있는 우리나라 유명 스타트업들의 매출을 살펴보자. ARR을 기준으로 보는 거니까 제일 보기 쉬운 SaaS 스타트업들 몇 개 살펴보았다.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출처의 한국 SaaS 스타트업 지도 (2023.08.23 기준)

이 중에서 개인적으로 익숙한, 너무 레이터 스테이지가 아닌 회사들 몇 개 살펴봤다.

1. 두들린(그리팅)

두들린의 매출현황

아참. 중소기업현황정보시스템에 들어가면 웬만한 스타트업들의 매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으니 참고하자. 근데 1분 안에 3개 이상 조회하면 크롤링이라고 판단하고 무려 1시간 동안 밴을 먹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두들린의 경우 2023년 한 해 매출액이 10억원을 조금 웃도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10억이 전부 ARR은 아니겠지만 그건 내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그냥 매출만 보겠다.. 두들린의 투자 현황을 살펴보면

두들린 투자유치 현황 (thevc)

2023년에 시리즈B 투자를 받았고 규모는 106억원 수준이었다. 시리즈 A인지 B인지의 여부가 중요한 건 아닌 것 같고 중요한 건 얼마나 투자를 받았는지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미국 기준으로 일반적으로 시리즈A는 $2m~$15m 수준에서 집행된다고 하고, 2023년의 미국 시리즈A 투자 집행금액 평균 규모가 $18m~$22m 수준이었다고 하니 (https://www.investopedia.com/articles/personal-finance/102015/series-b-c-funding-what-it-all-means-and-how-it-works.asp) 매직아이 뜨고 글로벌 스케일로 자체 보정해서 본다면 얼추 들어맞는 숫자인 듯하다.

2. 클라썸

클라썸의 매출현황

클라썸은 2023년 기준 15.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다들 돈 잘 버는구나.. 그렇다면 클라썸의 투자 레코드는 어떨까?

클라썸 투자유치 현황 (thevc)

22년 10월에 마지막으로 시리즈B를 받은 것을 볼 수 있고, 규모 역시 미국에서 말하는 시리즈A 수준임을 알 수 있다. 22년에도 10억원 전후의 매출을 내었으니 이 정도도 얼추 들어맞는 숫자인 것 같다.

3. 비즈니스캔버스

비캔 투자유치 현황 (thevc)

창업자 효과로 엄청난 투자를 받아온 것으로 유명한(?) 비캔의 경우는 어떨까... 문서 협업툴 Typed 만들다가 최근에는 세일즈 관리툴 Recatch로 주력 아이템을 선회한 것으로 보이는데 매출이 어떨지 궁금해진다. 일단 투자는 21년에 최초 시리즈A를 50억으로 열었고 23년에 시리즈A 팔로업 투자가 각각 50억, 10억으로 2번 이어졌다. 지금까지 시리즈A 총 투자금액은 110억원 수준.

비캔의 매출현황

그런데 매출이 2022년에는 6천만원 수준 2023년에는 5억원에 못 미치는 매출을 보이고 있다. 당연히 밸류에이션과 투자유치와 매출 상황 각각 그리고 그들간의 관계에는 수없이 많은 변수가 있겠지만 적어도 단편적으로만 떼어놓고 본다면 그닥 건강한 구조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다. 공부 잘한 사람들 많이 모아서 열심히 일하고들 계실텐데 쉽게 성과가 나지 않는 걸 보면 세상에 없던 (특히 소프트웨어 파는) 스타트업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레몬베이스나 플렉스, 페이히어 등의 회사들 살펴보았는데 다들 비즈니스 너무 잘 하고 있더라. 물론 나중에 가면 영업이익이 중요해지긴 하겠지만 소프트웨어 제품 팔아서 수십억 이상씩 매출 내는 것 자체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니까.

  • 레몬베이스 : 23년 1월 70억 유치(시리즈A) / 2023년 매출 19억

  • 플렉스 : 22년 1월 380억 유치(시리즈B) / 2023년 매출 160억

  • 페이히어 : 23~24년 350억 유치(시리즈B + follow up) / 2023년 매출 113억


소프트웨어 기반 창업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는 분이 계시다면 (나를 비롯해서) 종종 이런 숫자들을 살펴보는 것 도움이 된다. 시드투자까지는 어찌어찌해서 받을 수 있겠으나 시리즈A~B 수준으로 이어지려면(== 투자 자체가 목적은 아닐테니까, 다시 말해 장기적으로 생존하려면) 결국 실제 매출을 만들어야 한다. 메이커 커뮤니티 디스콰이엇이나 대학생 창업동아리에서 나오는 제품들 보면 이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제품들이 많아서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런 시행착오조차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 수 있긴 한데 열심을 다해도 창업 성공이라는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숱한 시간들은 많이 고통스럽다. ㅠㅠ 창업의 본질은 돈을 버는 것.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최소한 나름" 성공적인 스타트업들은 돈을 잘 벌고 있다. 이 점을 유념하고 올해도 창업 열심히 도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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