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을 꿈꾸는 사람으로서의 삶
고작 오늘 아침의 일인데 정확히 무엇 때문에 이 생각이 시작된 것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런 게 생각보다 더 불편하네. 이건 이렇게 해결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에 박혀 있었다. 이건 정말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전에 없던 제품을 만들어서 세상에 기여하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텐데, 이렇게 머릿속에 자리 잡은 생각은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계속 생각이 난다. 밥 먹을 때도, 양치할 때도, 심지어는 자면서도 생각이 난다.
학교 수업에는 더 이상 집중할 수 없었다. 교수님이 열정적으로 설명하시는 여러 가지 마케팅 전략들은 귀에조차 맴돌지 않았다. 나와 같이 창업을 꿈꾸며 사는 소중한 친구 정윤과 승준에게 신랄한 피드백을 부탁한다며 조언을 구했다. 이런 점에서 설득력이 부족한 것 같다, 저런 점을 보완하면 좋을 것 같다 - 같은 영양가 있는 지적을 받았다. 이승건 창업자는 주변 사람들 말에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이 친구들은 제품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나처럼 실패를 통해 체득한 멋진 사람들이다. 생각을 조금 정리하다가 곧바로 피그마를 켰다.
정말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사람들에게 가치를 주는 제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이번에야말로 이 분야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지난 5년 동안 10개 남짓 프로젝트 삽을 뜨면서 수도 없이 가졌던, 하지만 한번도 실현되지 않은 희망이다. 그런데도 바보같이 또 시작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일은 재미가 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를 사람들이 내가 만든 제품을 쓰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머릿속에 마구 그려졌다. 한동안 흑백이었던 시야가 컬러로 보이기 시작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그 모습 하나만 꿈꾸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업을 하게 된다.
사람마다 맞는 일이 있다고 느낀다. 혹자는 흔한 대학생 창업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며, 더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있다며 눈을 흘길 것이다. 그들의 생각이 틀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나한테는 회사에서 멋지게 일을 처리하고 커리어를 쌓고자 하는 "프로페셔널"들의 삶보다는 이런 삶이 더 맞을 뿐이다. 난 프로도 아니고 엘리트도 아니고 그저 언제 열릴지 모르는 문만 하염없이 두들기는 언더독이다.
발명가를 꿈꾸던 초등학생 시절의 초심을 잃지 않은 것에 감사한 마음이다. 평생 이렇게 낭만 있게 살고 싶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나은 방향으로 굴러가게 만드는 게 내 시간에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이런 수준의 끈기는 어디서 오냐. 이 정도의 일을 굳이 할 이유. 그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이유가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 이승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