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방식
이것은 내가 현재 일을 대하는 방식이자, 지금은 조금 부족하더라도 미래에 나아가고자 하는 일처리 방식의 방향을 정리한 글이다. 내가 어떻게 일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감을 다른 분들께 효과적으로 전해드리고자 글을 작성한다.
여러 주제의 포인트가 혼재되어 있는 점 미리 양해를 구한다.
바꿀 수 있는 의사결정과 바꿀 수 없는 의사결정을 구분해야 한다. 이후에도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의사결정이라면 큰 공을 들일 필요가 없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후에 바꾸어야 할 수 있는 종류의 의사결정이라면 언제든 바꿀 수 있게끔 의사결정 환경을 셋팅해야 한다. (예를 들어, 프로덕트의 전반적인 디자인을 언젠가 바꾸어야 할 수도 있다면 처음부터 디자인시스템을 완벽하게 설계하기 위해 리소스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
함께 정해야 하는 안건과 각자 정해야 하는 안건을 구분해야 한다. 대부분 회의시간에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모두가 모인 회의 자리에서 논의에 진전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지금 이야기하는 것이 꼭 회의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지, 각자 생각해온 내용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회의를 잡았다면 사전에 그 목적과 유형을 명확히 하여야 한다. 예컨대 함께 몇 시간이고 죽치고 앉아있으면서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회의인지, 각자 생각해온 내용들을 바탕으로 컴팩트하게 논의하며 효율적으로 액션플랜을 내는 회의인지 말이다. 이것이 명확하지 않을수록 - 팀원 수가 많지 않다면 상관 없을 수 있겠지만 - 회의의 효용이 흐릿해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회의는 추상적이기보다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구체적인 마일스톤과 액션플랜을 도출해낼 때만 회의는 의미가 있다.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유익도 낳지 못한다. 누군가의 실책으로 문제가 발생했다면 최우선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시스템을 통해) 예방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문제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미안하다. 앞으로 이런 일 없도록 하겠다"라는 말 한 마디면 족하지만, 만일 같은 종류의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면 해당 팀원의 자질을 의심하여야 한다.
어떤 정보의 발생(실현) 확률은 그 정보의 가치와 반비례한다. "내일 비가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습니다" 따위의 지극히 당연한 말은 정보량이 0이라는 말이다. 내가 지금 과연 영양가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지, 직접 말을 하는 도중에도 끊임없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팀 리더가 되었든 중간 관리자가 되었든, 매니저에게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prioritizing)'은 가장 중요한 태스크 중 하나다. 모든 목표를 한번에 달성할 수는 없다. 중요도와 리소스를 고려하여 태스크의 우선순위를 잘 매기자.
방임은 위임이 아니다. '알아서 잘 하겠지', '너무 마이크로매니징 하면 기분 나빠할 거야'하는 마음으로 방임을 해버린다면 해당 태스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이 큰 고통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마이크로매니징을 옹호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마이크로매니징은 특수한 몇몇 환경에서는 방임만큼 나쁘기 때문이다)
매니저는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기대 관리를 잘 할 줄 알아야 한다. 너무 높은 기대를 심어주면 잘 해야 본전이 되어버린다. 그렇다고 너무 낮은 기대를 심어주면 자신감이 없어보인다. 적절한 수준의 기대 관리를 유지하자.
어떤 액션의 기댓값은 {액션이 가져올 임팩트} * {해당 임팩트가 발생할 확률} 의 총합으로 계산할 수 있다. 여기에서 '임팩트'는 scale of impact와 duration of impact로 구분된다. 임팩트의 구성 비율은 조직마다 다르겠으나 언제 어떻게 없어질지 모르는 초기 창업팀의 경우 대부분 scale of impact에 중점을 두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비용/편익을 분석한다면 이렇게 액션 별 기댓값을 계산하여 비교해볼 가치가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코로나바이러스 발발 시기에 오랫동안 기다려온 해외 가족여행을 취소하자고 주장한 적이 있다. 우리가 마스크를 잘 쓰고 다닌다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은 극히 작겠지만, 만에 하나 감염되었을 때의 임팩트(e.g. 병에 걸려 고생하는 우리 가족)는 그 작은 확률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극심할 것이기 때문에(그 당시의 코로나바이러스의 위력은 지금보다 훨씬 상당했다) 적잖은 위약금을 물고서라도 여행을 취소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었다. 난 이런 방식으로 내린 의사결정을 단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input과 output이 서로 어떤 관계를 보이는지, 혹은 보이게 될 것인지를 명확히 하여야 한다. 인과관계를 보이는가 상관관계를 보이는가 아니면 어떤 관계도 보이지 않는가? 관계가 존재한다면 해당 관계는 선형적인가 기하급수적인가 U자모양을 그리는가?
여러 개념들의 필요조건 / 충분조건 / 필요충분조건 관계를 명확히 인식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가치와 가능성은 당위의 필요조건이다.
서로 배반되는 여러 개념쌍들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추상 ↔ 구체
양 ↔ 질
기술(discription) ↔ 규범
현상 ↔ 당위 또는 본질
형식 ↔ 내용
보편 ↔ 특수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무나도 기초적인 태도에 관한 것이긴 하지만.. if you have time to whine and complain about something then you have time to do something about it as well 이라는 말이 있다. 투덜대거나 불평할 시간에 발 벗고 나서서 빨리 문제나 해결하자.
물론 당연히 나도 완벽한 일처리 방식을 갖고 있지는 않다. 어쩌면 완벽은 고사하고, 우리 팀원들을 비롯한 어떤 이들의 눈에는 매우 부족한 수준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들과 모르는 사람들의 역량 격차는 매우 크다.
쓰다 보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와 자세, 역량의 기술서가 된 것 같다. 앞으로 더 기회가 된다면 살을 붙이며 개선해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