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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소리

현실적 낙관주의를 견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가끔씩 마음이 붕 뜰 때가 있다. 엄청나게 바쁘거나 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기분이므로 필시 시간의 여유에서 오는 정신적 사치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도 이러한 시간은 나의 내면을 더욱 깊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여전히 이루고 싶은 것은 많다. 작년부터 만들기 시작한 블로그 제품을 비롯해 어릴 때부터 단 한 순간도 놓은 적이 없었던 창업의 꿈은 조금씩이지만 계속 발전해나가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 처음 꿈을 가졌을 때보다 크기도 커졌고 해상도 또한 많이 뚜렷해졌다고 느낀다. 다만 내 의지가 조금씩 아쉬울 뿐이다. 하나의 아이디어에 꽂혀서 성과가 나오지 않아도 1년 이상씩 몰두했던 과거와 달리 요즈음의 열정은 조금씩 빨리 식는 것도 같다. 이런 경향성은 작년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느꼈는데, 각종 미디어로부터 오는 도파민 중독과 스타트업씬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린스타트업 정신이 오묘하게 짬뽕되어서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지는 듯하다.


성공한 창업가들은 "어차피 다음 시도도 실패하겠지, 그래도 계속하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창업가로서 성공하는 시점이라고 많이들 말한다. 이러한 철학은 스톡데일 패러독스로 대표되는 현실적 낙관주의에 그 기반을 둔다. 현실적인 낙관주의 태도를 견지하기 어려운 점은 "어떻게 그렇게 얻어맞고도 마냥 장밋빛 미래를 그릴 수 있느냐"하는 데에 있다. 말이 쉽지 정말 어렵다.


며칠 전 과학 유튜버 '궤도'씨의 말씀을 감명 깊게 들었다.

사람들은 물 들어올 때 노를 젓는다고 하는데, 나는 물이 들어오기 전에도 계속 노를 젓고 있었어. 땅을 긁으면서라도 앞으로 갔던 거야. 지금은 물이 들어와서 빠르게 가고 있지만, 언젠가 이 물이 빠져도 나는 다시 땅을 긁으면서 계속 노를 젓고 있겠지.

땅에 대고 노를 저을 수 있는 원동력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 원동력이 현실적 낙관주의의 일종이라고 봤을 때는 실패에 대해 낙심하는 정도가 작거나 시간에 대해 인식하는 할인율이 작아서 장기적으로 희망적인 태도를 일관되게 가질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태도나 철학까지 갈 것도 없이, 그냥 하는 것 자체만으로 가장 즐겁고 재밌는 일이니까 단기간 내 성과나 보상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도 계속 할 수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지금 내게 주어진 여러가지 가능성이 학업 때문에 적잖이 방해받고 있다. 계속 하다보면 기회가 온다고들 하는데 나는 내게 주어진 기회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된다. 만약 그렇다면 그 이유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내게 용기가 부족한가? 아니면 정말 중요한 것을 알아보는 통찰력이 부족한가? 내 생각보다 끈기가 부족한 것일 수도 있겠지. 어쩌면 셋 다일 수도 있다.


농구를 좋아하던 시절 즐겨봤던 만화 '쿠로코의 농구'를 보면 주인공 중 한 명인 키세 라는 선수의 독백 장면이 나온다. 유일하게 열정을 가졌던 농구에 흥미를 잃고 힘없는 바람소리가 들린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직은 키세처럼 한 분야를 통달하지도 평정하지도 못한 내게는 너무 큰 사치일 수도 있겠지만 요즈음은 어째서인지 내 귀에도 자꾸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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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코의농구> 중 장면


그런데 내가 정말 제대로 실패한 적이 있기는 한가?

뭘 했으면 얼마나 해봤다고 벌써 이런 매너리즘을.


숱한 침전의 시간이 있더라도 스스로에게 던지는 이 질문 한 줄이 또 다시 한 달 나아갈 의지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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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괜찮았다 - 라고 해서 우리가 정답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동안은 우리 모두 힘을 합쳐 해결해야만 했던, 예를 들자면 전쟁과 가난과 경쟁과 질병과 생존 등의 집단적 미션이 너무나도 명확했기 때문에, 진짜로 중요한 실존에 대한 문제는 뒤에 가려져있었을는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