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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하다 보면 뭐든 된다

이 사실을 처음 깨달은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꾸준히 하다 보면 뭐든 된다.


이 사실을 처음 경험했을 때는 고등학생 시절 '아름다운 가게'라는 사회적 기업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였다. 신참 중에서도 신참인 나는 그 곳에서 할 일이 없었다. 진열장 근처를 서성이면서 이미 잘 진열된 상품들을 괜히 정리해보다가, 영수증이 쌓이면 주요 부분을 찢고 버리는 작업 정도가 전부였다. 매니저는 물론이고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함께 일하는 봉사자들에게도 같은 급의 봉사자로 대우받는 느낌을 단 한번도 받을 수 없었다. 하고 싶지 않은 허드렛일뿐이었지만 묵묵히 했다. 대단한 이유에서가 아니라 어쨌든 해야만 하는 일이었으니까. 봉사활동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설 때면 정말 가기 싫어서 어쩔 줄 모를 정도였다.


학기 중에는 시간이 없으니 봉사활동은 방학 때만 할 수 있었다. 겨울방학 동안의 활동이 끝나고 봄학기를 마친 뒤, 여름방학에 다시 찾은 아름다운 가게에서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나 쌀쌀맞던 매니저는 꽤 반가운 목소리로 나를 맞이해주었다. 겨울에 처음 가게를 찾았던 나처럼 어리숙해보이는 학생들이 진열대 주변을 하릴없이 맴돌고 있었다. 그들은 매니저로부터 환대받는 나를 보고 오랜만에 직장에 돌아온 선배 정도의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항상 고경력자(?)들과만 일하고 있었기에 나는 말도 제대로 나누어보지 못했던 대학생 누나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기 시작했다. 내심 꿈에만 그렸던 계산 업무까지 배우고 나니 이제 매장 운영에는 어려울 것이 없었다. 그 즈음 매니저는 나에게 “일을 참 깔끔하고 믿음직스럽게 잘한다”라고 칭찬을 해주었다. 일도 없고 친구도 없어 외로웠던 것이 며칠 전 일 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니 매장에서 가장 신뢰를 받는 일꾼 중 한 명이 되어 있었다.


비슷한 경험이 또 있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시절 나는 흔히 말하는 ‘수포자’였다. 우리 고등학교 수학시험이 어렵기로 유명한 것도 있었지만, 평균 40점대의 시험에서 내 성적은 30점대를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가장 심했을 때는 20점대를 받기도 하였다. 다섯 반으로 나뉘는 수준별 분반에서 나는 한번도 세 번째 반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3학년 때 처음으로 수학을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흥미가 붙었다. 서점에서 제일 두꺼운 기출문제집을 사서 종일 풀다보니 한 손에 꼽히는 등수가 되기도 하더라. 그래도 1, 2학년 내용을 소홀히 했던 탓에 수능 수학에서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다시 수능 공부를 했었다. 마지막 수능을 공부할 때 즈음에는 수학이 가장 재미있는 과목이었다. ‘이제 나 수학 잘한다’라고는 단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두 번의 모의고사에서 모두 만점을 받은 뒤 누군가로부터 “그래도 넌 수학을 잘하니까”라는 말을 듣고서야 처음으로 실감이 났다. 수학이 너무 어려운 나머지 어떻게 공부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던 17살 때의 내 모습이 겹쳤다. 그냥 계속 했을 뿐인데 정신을 차려보니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난 결국 스무살 때 입학했던 학교로 복학하게 되었다 ㅋㅋ)


생각해보면 중학생 시절 나는 영어를 못해서 담임 선생님께 혼나기까지 했었다. 그래도 꾸준히 하다보니 외국에서 살다왔냐는 질문을 받아보기도 했다. 개발 전공 지식은 커녕 컴퓨터 기초 지식조차 없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차근차근 열심히 하다보니 1인분 비슷하게는 할 줄 아는 웹개발자가 되어 있었다. (물론 최적화 같은 건 여전히 할 줄 모른다... 경력자들이 보면 코웃음칠 코드일 거다)

아무리 어려워보이고 불가능해보여도 조금씩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새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꾸준히 하는 것의 힘을 믿는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비싸지는 게 와닿는다. 서비스랍시고 이것저것 뚝딱 만들면 주변에서 칭찬해주던 나이도 지났고, 대학 동기들은 IB에 전략컨설팅, 회계사 같이 하나같이 번지르르한 직장들을 구해 독립하기 시작했다. 요즈음은 성과가 빠르게 나지 않아 조급한 마음도 종종 들곤 한다. 조금 결이 다르긴 해도 여기에 닿아있는 문제 또한 결국 꾸준히 하는 것에 해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위대한 회사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항상 10년이 걸린다고들 한다. 먼 미래에 있을 모습들과 나 자신을 비교하기보다는 오늘 하루 조금 더 나아진 모습에 집중하면서 그냥 꾸준히 하려고 한다. 여느 경험에서 그랬던 것처럼,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면 지금은 상상도 못할 가치를 만들고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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