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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잘 하는 법

2023년 12월의 기록

브런치 작가 신청하려고 작가 서랍 들어가봤다가 재작년 12월 즈음 써둔 글이 있길래 가져왔다. 지금 보니 너무 당연한 말이긴 한데 개인적으로도 당시의 기억과 함께 돌이켜보면 좋을 것 같아서. 또 암묵적으로는 다들 알고 있는 내용이겠지만 명시적으로 끄집어내어서 회의 준비 과정에 활용하다보면 각자 얻는 것도 있을 거다.



옛날에 한번은 창업팀 정기회의를 진행하다가 팀원에게 날카로운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런 얘기는 회의에서 하고 있을 논의가 아닌 것 같은데 왜 지금 하고 있냐고, 이런 건 미리 논의를 해와서 회의 시간에는 빠르게 짚어야 될 것들만 짚고 넘어가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그 친구가 직장인이며 시간이 새벽 1시였다는 상황 때문에 그 피드백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조금은 억울한 면이 있었다. 당시 우리가 나누던 이야기는 프로덕트 개발 및 QA 일정에 꼭 필요한 논의였을 뿐만 아니라 회의가 서너 시간 째 진행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한시간 반 정도 되었었던 것 같다). 한편 이런 감정과는 별개로 이 피드백을 들은 이후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회의를 한 시간 안으로 컴팩트하게 마치게 되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기는 했다.

칼같은 우리 팀 디자이너
칼같은 우리 팀 디자이너

그러던 중 오늘 솝트 임원진의 n번째 전체회의를 준비하면서 새삼 명쾌해진 점이 있다. 우리는 대체 회의를 왜 하는걸까? 회의는 무엇을 위해서 하는걸까? 회의를 더 잘 하기 위해서는 ‘우리 팀이 회의에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를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해당 목적을 더 잘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았다. 오늘의 깨달음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이야기의 골자만 끄적여본다.

솝트 임원진 회의 기록의 일부. 이 정도면 회의 노하우가 생길 때도 되었다
솝트 임원진 회의 기록의 일부. 이 정도면 회의 노하우가 생길 때도 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회의의 목적을 확실히 해야 한다. 오늘 하는 회의는 어떤 형태의 결과물을 내기 위한 회의인가? 3~4시간 넘도록 각자 노트북 앞에 앉아 이것저것 논의하며 함께 태스크를 처리하는 모각작 형식의 회의인가? 아니면 정말 논의가 필요한 주제들에 대해 팀 전체적으로 의견을 씽크하고 방향성을 다잡고 일정을 픽스하는 회의인가? 회의의 종류를 구분하고 결정하는 데에는 ‘그래서 오늘 회의에는 몇 시간 정도를 쓸 것인가’하는 문제가 직결되어 있다. 시간을 짧게 써야 하는지, 아니면 길게 써도 되는지의 여부를 먼저 정하고 나면 해당 회의에서 해야 할 일들도 보다 명확해진다는 의미다.

만약 전자처럼 모각작 형식의 회의라면(이건 엄밀한 의미의 회의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회의 준비에 크게 신경쓸 필요는 없는 듯하다. 이런 경우에는 회의를 하며 함께 처리해야 할 태스크에는 무엇이 있는지만 사전에 서로 공유하고, 그런 태스크에 확실한 우선순위를 두어서 회의를 진행하는  중요하다. 혼자 해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함께 보내는 귀중한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만약 후자 같은 형식의 회의라면 조금 더 프로처럼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일단 [1] (주로 회의 진행자가) 지금 시점에서 해야 할 일들을 리스트업한다. 회의의 맨 처음이나 맨 마지막에는 이들 중 빠뜨린 건 없는지 논의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2] 해야 할 일들을 팀원들에게 배정한다. 만약 어싸인 레거시가 없다면 이건 너가 해! 하며 탑다운으로 통보하기보다는 “네 역할이 이러이러한 거니까 이건 네가 맡아서 하는 게 어떻겠냐?”하며 제안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우리 솝트 임원진의 경우 어싸인 레거시가 있어서 태스크의 80% 이상은 크게 어려움 없이 담당자가 정해진다. (3) 다음으로는 ‘오늘 같이 논의하면서 그 구체적인 내용을 정해야 하는 종류의 태스크’와 ‘담당자가 어느 정도 이상 해와야 하는 종류의 태스크’를 구분한다. 전자의 태스크들은 빠르게 논의하며 결정하면 되고, 후자의 태스크들에 대해서는 담당자들이 언제까지 어느 수준으로 해오겠다 하는 데드라인만 정해서 공유하면 된다.

회의는 그 논의 대상과 내용에 따라서 형식이 크게 크게 달라진다. 명확하게 할 것은 확실히 명확하게 하고 R&R 잘 나누어서, 팀원들과 불필요하게 기운을 빼거나 찝찝하게 헤어지는 일이 없도록 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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