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의 세대
계절학기 교양수업 과제 : "나는 XX세대이다" 문장을 완성하세요.
나는 실존(의) 세대다. 라고 말하겠습니다.
요즈음의 젊은 세대는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도 '나는 뭘 위해 사는가?'라는 어려운 질문에 직면해있는 듯합니다.
이러한 종류의 질문이 야기하는 회의감을 일컫는 Existential crisis(실존적 위기)라는 표현이 영어에는 있습니다. 저도 몰랐는데, 의외로 꽤나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더라고요. 얼마 전 세계 제일 갑부 자리에 오른 일론 머스크씨가 어린 시절 심하게 겪었던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과거의 우리들은 모두 제각각, 최소한 어느 정도씩은, 살아야 하는 명백한 이유를 집단적으로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가난과 전쟁과 질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응당 당연히 가져야 했던 가족들을 책임지기 위해. 더 다양한 것을 먹고 갖고 경험하기 위해. 등등. 어느 순간에도 완벽한 이유는 아니었겠으나 최소한 어느 정도씩은 공유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옛날에 비해 풍족해진 요즈음에 와서야 저희는 실존적 위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며, 가고 싶은 여행지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같은 나라에 사는 친구와의 잡담은 물론이고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침대에 누워서 지켜볼 수 있게 되었으며, 절대적인 가능성 자체는 여전히 크지 않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큰 돈을 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과거에 비하면 거의 무한에 가까운 물리적 자유가 주어진 셈입니다. (각각 1990년대와 2010년대에 상용화된 인터넷 기술과 인공지능 기술이 이를 가능하게 해주었지요) 전에 없이 자유로워진 인간은 역설적이게도 이 자유라는 도구를 어떻게 쓰는 건지 모르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바라왔던 것들이 모두 가능해지니 오히려 삶의 이유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 제기입니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우울증 환자와 자살 사건의 수가 이러한 생각을 방증해주는 듯합니다.
비슷한 주제는 아닌데요. 언젠가 책에서 읽은 글귀가 생각나서 가져왔습니다.
"여기서 대한민국의 국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반공, 통일 등은 국시로 적절치 않다. 국시란 대한민국이 하나의 국가로서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반만년 역사를 유지하고 있는지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해볼 일이다." - <경영학두뇌> 김병도 교수 저
실존에 대한 고민도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각자 독립적인 사람으로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한 고찰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왜 살고 있는 걸까요? 우리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과거에는 괜찮았다 - 라고 해서 우리가 정답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동안은 우리 모두 힘을 합쳐 해결해야만 했던, 예를 들자면 전쟁과 가난과 경쟁과 질병과 생존 등의 집단적 미션이 너무나도 명확했기 때문에, 진짜로 중요한 실존에 대한 문제는 뒤에 가려져있었을는지 모릅니다.
좋으나 싫으나 이제 우리는 실존의 위기를 점점 더 가까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MZ세대가 N포세대이니 뭐라느니 명명하고 특징짓는 대부분의 것들은 이러한 실존 위기에서 기인하는 현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인용한 김병도 교수님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지 그 본질에 대해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해볼 일이겠습니다.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요.
20분 동안 휘갈긴 생각. 때로는 퇴고가 없는 글도 날것의 매력이 있으니까..